대기업 간부들의 비밀스러운 `인맥관리 기술`
 
인사에 직접 영향 미치는 사람 ‘1등급’
휴대전화에 1500명 저장… ‘친한 사람들’은 개인의 ‘사회적 자산’
 
3년 전 국내 굴지의 S그룹에 근무하는 김 아무개 부장의 이력서가 헤드헌터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  MBA출신도 아닌 데다 영어 실력도 뛰어나지 않았고 화려한 경력도 없었다. 그런데도 김 부장의 이력서는 헤드헌터들의 포섭 대상 0순위였다. 이유는 이력서 맨 위에 적힌 한 줄의 문구 때문이었다.

‘본인의 PDA에는 국내 주요 인사 1500명의 휴대전화 번호가 저장돼 있습니다’.

기자는 최근 어렵게 그와 접촉하는 데 성공했다. 실제로 그의 PDA 속에는 1800명 가까운 인사의 리스트가 저장돼 있었다. 그새 300명 정도가 업데이트된 것이다. 단순히 전화번호만 입력해 놓은 것이 아니다. 중요도에 따라 10등급으로 분류해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었다.

등급 나눠 수시로 ‘업데이트’

직속상관이나 부서 임원을 비롯해 현재 자신의 업무와 인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면 ‘1등급’ 폴더에 등록된다. 1등급 인사들과 이해관계가 있거나 그들과 친분이 두터워 자신의 업무나 인사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은 ‘2등급’ 폴더에 들어간다.

당장은 직·간접적으로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중·단기적으로 자신의 미래에 적잖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3등급’ 인물이 될 자격이 있다. 당장도 앞으로도 알 필요가 없지만 상위급 인사들이 알고 싶어할지도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최하위 10등급 폴더에 넣어둔다.

김 부장은 적어도 1~3등급 폴더에 있는 인사들에 대해서는 이른바 ‘특별관리’를 한다고 말했다. 나이(생일)·고향·출신학교·경력 등 기본적인 데이터는 물론이고 업무스타일·성격·습관·취미·주량 등까지 꼼꼼하게 메모해 두었다.

특히 1등급 인사의 경우는 회사 안팎에서 누구누구와 친분이 있고 주위 사람들이 그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지도 파악되는 대로 기록해 놓았다. 김 부장은 이처럼 거의 완벽에 가까운 인물 데이터베이스(DB)를 들고다니며 틈날 때마다 체크한다고 말한다.

그는 “이런 자료들은 늘 유동적이어서 잠시라도 정리하는 일을 게을리하면 쓸모가 없어진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인사이동 등 환경 변화가 있을 경우 기존 인사들의 등급도 그에 따라 대폭 개편되기 때문이다. 특히 자신의 위치에 변화가 생길 경우에는 1등급 인사가 10등급으로 밀려나거나 전혀 새로운 인사가 1등급 핵심 인물로 등극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명함집이 일기장?

인맥관리를 잘해야 성공한다는 것은 더 이상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누구나 인맥관리를 잘하고 싶지만 문제는 어떻게 하느냐다. S그룹의 김 부장 못지않게 인맥관리를 잘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 또 한 명의 달인이 있다. 또 다른 대그룹인 S그룹의 한 임원 얘기다. 그는 나이 탓인지 PDA가 아닌 명함을 가지고 철저한 인맥관리를 한다.

누군가와 첫 대면 때 명함을 받으면 헤어진 후 반드시 받은 명함에 메모를 해두는 습관이 있다. 인상착의와 간단한 인적사항은 물론이고 언제 어디서 만났고 무슨 얘기를 나누었는지 깨알같이 적어둔다. 만약 그 사람을 또 만나게 되면 그때도 장소·시간·화제를 기록한다. 그러다 보니 그의 명함집은 일기장처럼 변해버린다.

어느 정도 명함 데이터가 쌓였다 싶으면 그는 분류작업에 들어간다. 우선 명함에 적힌 글자가 많을수록 자주 만난 사람이다. 또 주제를 놓고 보면 얼마나 ‘영양가 있는 얘기’를 했는지 알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한번 더 만날 사람인지, 자주 만날 사람인지, 아니면 굳이 만날 필요가 없는 사람인지를 결정한다. 또 관계 유지를 위해 연락을 한 달에 한 번 정도 할 사람인지, 1년에 두 번 정도 할 사람인지까지 명확하게 구분해 정리한다. 바로 그 명함 위에 말이다.

인맥관리는 개인뿐 아니라 기업에도 중요한 경쟁력이다. 정보력에서 단연 으뜸이라는 삼성인맥관리력은 정평이 나 있다. 효율적인 인맥관리를 위한 인물분석 작업부터가 다르다.

삼성그룹에서 정보업무를 맡다가 퇴직한 한 인사는 “삼성이 확보하고 있는 인물정보는 겉보기에는 여느 언론사나 포털사이트에서 볼 수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면서 “그러나 그 안을 들여다보면 그것은 어디서도 보기 힘든 완전히 다른 정보”라고 귀띔했다.

예컨대 인물 자체에 대한 정보 외에 인물들 사이의 친밀도를 매우 체계적으로 측정해 놓고 있다는 것이다. 단순한 학연·지연만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어느 정도 유대감이 있는지를 면밀하게 분석해 계량화했다는 얘기다.

이렇게 체계화된 인맥지도를 바탕으로 대상 인물과 연결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경로를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인물정보 수집과 인맥지도를 완성하는 작업에는 별도 팀 외에도 일반 직원들을 활용하기도 한다. 어느 삼성맨은 신입사원 때부터 자신의 지인 중에 유력 인사가 있는지를 찾아내 보고했다고 전했다.

삼성 인맥지도 vs SK지인관리

SK그룹은 15년 전쯤 이른바 ‘지인관리 프로그램’을 전격 가동했었다. 전 직원을 대상으로 경제계, 정계, 관계, 학계, 군(軍)에 이르기까지 자신과 연관 있는 인사들을 찾아내 보고하라고 했다. 그 결과 주요 인사들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직장인들에게 보다 절실한 인맥관리는 조직 밖에서가 아니라 안에서다. 특히 상사들과 긴밀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조직 생활에서 생존적인 문제다. 어느 ‘라인’에 서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인식은 위로 갈수록 더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방법론이 나오고는 있지만, 어느 하나 쉬운 것 없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두산그룹은 임직원 574명을 대상으로 직원들의 인맥관리 실태를 조사했다. 응답자의 67%가 ‘현재 별도의 인력관리를 하고 있다’고 답했다. 인맥관리가 필요하다는 의견은 무려 97%에 달했다.

몇 명 정도의 인맥을 확보할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35%가 ‘10~30명’을 꼽았고, 19%는 ‘30~60명’, 16%는 ‘60~100명’이라고 답변했다.

인맥관리 수단도 가지가지였다. 그 가운데 인맥관리를 위한 최고의 도우미로 ‘술자리와 휴대전화’를 꼽은 응답자가 24%로 가장 많았다. ‘e-메일’(15%), ‘유머·재치’(10%), ‘여유시간’(7%), ‘다양한 지식’(7%), ‘표정관리’(5%) 등도 유용한 수단으로 꼽혔다.

인맥이 가장 절실할 때로는 응답자의 38%가 ‘동종업계의 정보가 필요할 때’라고 답했고 항상 필요하다는 응답도 21%나 됐다. 그 밖에 취업·이직 등을 할 때(19%)나 경조사(13%) 때라는 답변도 많았다.

디지털화, 개인화가 심화되면서 직장인에게 인맥관리는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인맥관리는 직장인 생존전략이 된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아날로그 방식의 인맥관리로는 곤란한 것이 현실이다. 조직문화가 합리적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윗사람과 가까워지기 위해 적극적인 제스처를 하는 것 자체가 자칫 위험해질 수 있다. 주위의 견제를 받기도 하겠지만, 정작 자신이 가까워지려는 상사에게 그 의도를 읽히기 십상이다.

그래서 D기업의 모 부장은 조금 색다른 방법을 구사한다. 윗사람에게 드러내놓고 다가가지 않고 윗사람의 인맥을 잘 관찰하는 것이다. 그 인맥을 잘 들여다보면 그 가운데 자신이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는 사람도 한둘은 나온다는 것이다.

그 사람이 외부 인사라면 더욱 안전하다. 그렇게 친분을 쌓아두면 그 사람을 통해 자신의 얘기가 윗사람에게 자연스레 전달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평소에도 윗사람이 누구의 경조사를 잘 챙기는지, 어떤 인사와 자주 만나는지를 주의 깊게 본다고 한다.

조직 내에서 인맥을 보다 빠르고 확실하게 넓힐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자신하는 이도 있다. 대기업인 H기업의 모 이사는 윗사람 중에서 가장 탄탄한 인맥을 가진 사람을 집중 공략한다고 한다.

네트워크의 주변보다는 중심에서 ‘포털’ 역할을 하는 인물에 전폭적으로 투자하는 것이다. 뜻대로만 된다면 한꺼번에 넓은 인맥을 확보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공공 이익으로 인맥을 쌓는다

아랫사람이 윗사람과 끈끈한 인맥을 쌓는 데 가장 큰 무기는 ‘정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역시 H기업의 한 지점장은 지휘계통선상에 있지도 않은 본부장에게 틈만 나면 보고를 한다. 궁금해 할 법한 정보들을 수집해 보고하면서 신뢰를 얻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자신을 지휘하는 본부장에게 e-메일을 보낼 때 ‘숨은 참조’를 이용해 자신이 가까워지려는 다른 본부장에게도 정보를 제공한다. ‘비겁할’ 정도의 기술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이런 눈물겨운 노력들에도 성공적으로 인맥관리를 하는 사람들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사회학계에서는 인맥을 ‘사회적 자산’으로 규정한다. ‘경제적 자산(富)’ 못지않게 개인의 능력을 입증하는 가치라는 것이다.

연세대 사회학과 박찬웅 교수는 “사회적 자산인 인맥 역시 경제적 부와 마찬가지로 편중되기 마련”이라고 설명한다. 인맥에서도 ‘양극화’ 또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가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글로벌 기업들도 이런 현상은 마찬가지라고 한다. 외국 기업에서 성(姓)이 아닌 이름을 부르는 경우는 상당히 친한 사이임을 의미한다. 그런데 한 조사에 따르면, 대부분 글로벌 기업들에서 직급이 높은 사람일수록 ‘이름만을 부르는 사람들’이 회사에 많다는 것이다.

이는 회사 안에 특정인과 심정적으로 가까운 이들(이름만을 부르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이는 회사 아래에서는 인맥을 쌓기가 그만큼 힘들다는 말과 같은 얘기다. 인맥이 두터운 사람은 인맥이 두터운 사람을 만나려고 한다. 인맥이 없는 사람은 악순환을 거듭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조직에서 인맥 쌓는 방법을 아직 못 찾은 사람이라면 박 교수가 제시하는 방법을 한번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이른바 ‘공공의 이익’에 충실하라는 것이다. 윗사람 한 명이 아닌, 조직 전체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장기적으로 효과적이라는 뜻이다.

부서원 전체에게 유용한 활동이 무엇일까 고민하고 그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면 결국에는 부서장에게도 혜택이 돌아가므로 그 부서장과 진정한 인맥을 쌓게 된다는 논리다.

예컨대 명절 때 부서장에게만 남몰래 값비싼 선물을 하는 것보다 부서원 전체에게 약소하더라도 정성껏 선물을 하는 것이 조직 내에서 더욱 두터운 인맥을 쌓을 수 있는 비결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이 같은 노하우는 성공 확률이 더 높을 수도 있다.

공공의 이익을 저버리고 영향력 있는 특정인과 인맥을 쌓으려다 오히려 조직 내에서 ‘공공의 적’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인맥을 만드는 CEO파티

+ Recent posts